mojiseoul(모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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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비스의 아버지 - 메로빙거

7세기 때는 샤흘르 마를텔 이라는 사람이 군재라고 왕 왕대신 총리역할 이사람은 푸아티에 전투에서 아주 중요한 전투를 했다. 732년에. 이 푸아티에 전투는 프랑스 북부로 올라오고 있던 아랍사람들의 침략을 막은 것이다. 그 때는 8세기였는데 8세기 같은 경우에는 더 이상 비지고트 왕국은 없다.

비지고트 왕국은 몇년 동안 있었지만 나중에 아랍사람들은 아프리카 북부로 가서 스페인으로 들어가서 스페인을 정복해서 스페인에서 정착했다. 그 때 아랍사람들은 새로 생겼던 이슬람 종교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새로운 이슬람교를 전파시키기 위해서 피레녜 산맥을 넘어서 프랑스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했는데 빠리로 넘어오기 시작하면서 파리수도에서 나온 샤흘르 마르텔이라는 총리의 군대와 싸워서 결과적으로 샤흘르 마르텔이 승리하고 나중에 이사람의 이름을 따서 카럴링거 왕조가 시작했다. 

몇년 후에 아주 유명한 Charlemagne 이 통치했다. 한국어로는 카롤루스 대제이다.740년과 742년 사이에 태어났고 814년에 사망했다. 그사람은 800년에 황제가 되었고, 새로운 제국을 설립했다. 이 새로운 제국의 이름은 서로마 제국이다. 400년 전에 없어졌던 서로마 제국을 부흥시키기 위한 의도 였다.

프랑크 왕들이 다 기독교 왕들이니까 신성로마제국이다(800년)(중요!)

카롤루스 왕은 독일왕이라고도하고 프랑스왕 이라고도 한다.그래서 게르만족 문화권 관련된 요소들도 많다. 그러나 갈로로마 영토 정복해가지고 옛날에 갈로로마였던 지역에서 살았을 때는 어쩔 수 없이 프랑크사람들이 자신의 문화를 그대로 유지할 수 없었다. 점점 프랑크 문화와 그 지역의 원래 있었던 문화는 조금씩 통합하게 되었고 언어들도 혼합되었고 8-9세기 쯤 프랑크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라틴어 골어 프랑크어가 섞인 언어였다. 결과적으로 까롤루스 대제는 프랑스왕도 아니고 독일왕도 아니고 게르만 출신의 카롤망고 왕국의 왕이다.

오렌지색 지도는 카롤루스대제의 제국이고 녹색은 앵글로색슨 제국이고 갈색은 아랍제국이었다. 붉은색은 원래 기독교 스페인의 지역. 노란색은 동로마제국. 까롤루스 대제의 제국은 아주 큰 편이었다. 그 제국의 수도가 파리가 아니라 원래 아헨? 이었다.

카롤루스 대제는 수도원의 문화적 기능을 강조했다. 수도원은 교육의 역할도 가지고 있다. 현대의 대학교 개념

그래서 옛날 문화와 문서들을 보면서 교육도하고 그 뿐만 아니라 중세시대의 수도사들은 침략시대에는 여러전투들이 많아서 제일먼저 할 수없는게 농사이다. 그래서 농사는 제일 필요한 것만 한다. 그 때는 몇백년 동안 없어진게 식물의 다양성이다. 그래서 수도원에 있는 텃밭의 역할이 중요했다. 

까롤루스대제가 사망 후 그의 손자 3명이 싸워서 3지역으로 나눴다.  (오른쪽 지도)

그때 부터는 서로마 제국은 신성 서로마 제국이라고 부르고 여기있는 것은 3가지  왕국으로 분리 되었다.

- 녹색은 lotaire라는 손자가 통치하는 왕국.(독일,버건디,이탈리아 북부)

- 분홍색은 charles le chauve가 통치 (프랑스)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중세시대 후반 현대시대의 유럽의 새로운 모습이 조금조금씩 구성되어 있다. 쉽게 말하자면 서로마 제국은 3가지 왕국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제국은 없어지지 않고 원래 녹색으로 되어있는 부분은 신성서로마제국이라 불린다. 즉 신성 서로마제국은 없어지지 않는다. 분홍색은 제국이 아니라 왕국이다. 점점 이 왕국은 프랑스가 된다.

중세시대에는 봉건제도가 시작했다. 맨위는 봉건군주 그 밑은 귀족들로 구성된 봉신이다. 위에있는 사람들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해주고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아래에는 서민들이 있다, 서민들 중에는 성직자가 있다. 성직자는 여러가지 권리가 있어서 가운데 있다고 생각할 수있다. 나머지는 대부분 농민들이다. 이런 평민 외에는 거의 노예라고 생각 되는 사람들도 있다. 밑에 있는 사람들은 윗사람들에게 노동력을 제공했다. 이렇게 서로 위계시스템 내에서 서로 주고받는것을 봉건제도라고 하며 피라미드 형태이다.  성직자,귀족 그리고 나머지 평민과 농노가 있다. 

다음왕조는 카페티안이라고 한다. 이제부터 프랑스라고 부를 수 있다. 843년 이후 부터는 프랑크 왕국은 더이상 프랑크 라고 하지 않고 지금 부터는 프랑스라고 한다. 987년은 보통 10세기 말이고 10세기 부터는 변화가 일어난다, 스칸디나비아등의 북부지방민족들이 서유럽에 계속해서 침략했다. 바이킹사람들이 북부지방에 정착해서 프랑스사회에 통합되기시작했다. 언어나 습관등등. 이 지역은 그 사람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이 북부에서 왔으니까 노르망디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바이킹들이 온 후로는 유럽에서 큰 침략이 없었고 평화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10세기 부터는 문화와 예술이 발전될 수 있었다. 먼저 10세기 프랑스에서 발생했던 것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발상이었다. 

로마네스크는 로마시대와 비슷한 양식이고 원래 건축으로 부터 볼 수 있었던 새로운 문화 경향이다. 유럽남부에서 시작했는데 스페인과 피레녜에서 시작하였고 점점 프랑스 북부로 이동했다. 이 문화 경영은 건물로 많이 표현되었다. 어떤 건물이냐면 대부분 그 시대의 중요한 건물들은 교회와 성당들이었다. 그래서 그 시대부터는 나무로 만든 교회들은 튼튼하게 돌로 로마네스크 방식으로 만들었다. 로마시대 건축기술을 사용해서 만든 건물들은 튼튼하지만 높게 지을수 없고 큰 창문을 만들수 없어서 어두운편이다.

거의 200년 이후에는 12, 13세기 부터는 이번에는 프랑스 남부가 아니라 파리지방에서 시작한 새로운 문화 경향이 뭐냐면 고딕양식이었다. 건물들을 조금 더 크고 높이 만들기 위해서 새로운 건축 기법을 만들었다. 옆에 기둥을 만들면 더 높히 지을 수 있었다. 왜 고딕양식이라고 부르냐면 파리지방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지으면 로마네스크 방식에 익숙했던 사람들한테는 이상한 방식으로 여겨져서 이것은 오랑캐들이 사용하는 양식이라고 부르기 위해서 고트 민족이름을 사용했다. 

루이 9세가 십자군 전쟁을 한 다음에 예루살렘에서 돌아와서 콘스탄티노플에 가서 동로마제국의 황제에게 예수와 관련된 유물을 몇가지 구분했다. 예수의 가시관의 유물 일부 그리고 예수와 관련된 것들을 가져와서 이런 유물들을 보관하기 위해서 제일 멋있는 교회를 만들었다. 이 새로운 건축양식을 만들어서 그때는 드물고 매우 비싼 유리를 활용했다. 교회는 로마네스크 방식으로 만들 수 없었던 큰 유리를 고딕양식때는 가능하게 했다, 큰 창문 때문에 빛이 많이 들어오고 스테인드글라스 기법을 사용해서 색깔있는 유리 들이 매우 이쁘다.

이런 새로운 교회와 성당을 통해서 일반적인 신자들이 사실은 이런 교회에서는 새로운 신을 만날 수 있었다. 신은 유일한데 프랑스나 유럽에 가서 로마네스크 교회를 보면 조용하고 시원하고 어둡고 기도하려면 잘 집중 할 수 있는데 이런곳에서는 신과의 관계를 맺기가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고딕양식에서는 빛이 많이 들어오니까 하나님의 권력과 훌륭한 힘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중세시대에는 색깔이라는 것을 생산하기 쉽지 않았다. 옷은 염색하기 위해서 다양한 색깔들이 있던 것이 아니다. 부자들만 색깔옷을 입을 수 있었다. 12,13세기 부터는 개인화 되는 시대이다. 신과 개인의 관계가 많이 변하고 있다. 옛날에는 기독교 종교를 접근하려면 예배는 라틴말로 했다. 그래서 위계질서가 심했다. 성직자들은 종교와 관련된 모든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직접 하나님과 신들을 만나고 싶으면 성직자를 통해서 해야했다. 직접 신한테 기도하고 부탁하는 것은 어려운 편이었다. 점점 이로운 새로운 성당에서는 신과의 관계가 변화할 수 있었다. 

고딕양식은 돌로만들어진 책 돌로만들어진 양식이다. 교육을 잘 못받은 라틴어를 모르는 평민들도 교회에가서 직접 배울 수 있고 직접 기도하면서 멋진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서 비치는 여러가지 색깔들의 빛을 받으며 정신적인 체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12,13세기 부터는 중세시대에 가치관이 점점 바뀌고 있다. 사고방식도 바뀌고 도시들도 개발되기 시작한다. 점점 중산층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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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은 라틴어로 갈리아 라고한다.

    골사람은 라틴어로 Gallus 라고 한다.

    또한 Gallus라는 것은 수탉이라는 의미가 있다.

    골 부족들의 분포 : 켈타/아키타니/벨가

    노란색 땅은 이탈리아 로마의 식민지였다.

    점점 로마사람들이 골족 영토로 가깝게 정착하고 싸우기 시작 했을 때 부터는 골 사람들이 자신들도 도시같은 것을 건설해야한다고 이해했다. 특히 성, 요새화된 성같은 것을 만들어야 된다고 이해했다. 

    줄리어스 시자 장군이 기원전 56년부터 골전쟁을 시작했을 때 부터는 시자의 부대들이 얼마나 빨리 골을 정복하는걸 보니까 골사람들 더이상 따로따로 농장에서 살면안되고 모아서 큰 도시나 성같은 도시에서 살아야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전쟁하기 위해서 연맹을 맺어서 다같이 싸워야 된다고 알게 되었다. 그래서 원래 국가가 없었던 골족에서 왕을 선출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원전 1세기 부터 생기는 것이 뭐냐면 오피둠이라는 말이 생겼다. 오피둠은 성이라는 뜻이고 원래 도시나 성이 없었던 골족사람들이 다른방식으로 살게 되었다는 뜻이다. 

    골 전쟁 때문에 골족의 문화가 완전히 변화했다. 기원전 52년에는 골사람들의 수도였던 알레시아전투에서는 골사람들이 패배했다.

     이 전투로 골 전체적으로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사실은 골전쟁은 52년에 딱 끝내는것이 아니라 완전히 골의 영토를 정복하기 위해서 시자장군은 전쟁을 좀 더 해야했다. 51년에 끝났다. 

    51년 부터는 골이라는 문화가 없어지고 시작되는 새로운 문화와 시대가 골+로마 시대이다. 이 새로운 갈로 로마 같은 경우에는 새로운 로마제국에 소속되어있다. 첫번째 로마 황제의 사망이후의 도시이다. 첫번째 황제는 아우구스투스이다. 줄리우스 시자의 조카이다. 줄리우스 시자는 절대로마의 황제가 아니었다. 서기 14년에 아우구스 투스 사망했을 때 로마 제국의 모습은 딱 그거였다. 로마제국은 아주 큰 편이었다. 지중해 주변에 모든 나라들을 다 포함하였다. 영국에서 북아프리카 그리고 이집트까지 시리아 이라크 일부 까지 포함. 

    골은 그저 일부일 뿐이었다. 리옹은 원래 골 외의 수도였다. 아우구스투스 시대는 로마시대의 로마식 평화시대이다.(Pax Romana)

    경제, 사회, 문화 등등 여러가지 분야에서 발달이 이루어졌던 시기이다. 그것 때문에 골족들도 팍스로마나 시대에 많이 발전했다. 파리 같은 경우에는 새로운 로마양식과 건물들을 많이 만들었다(큰 광장과 시장 대중목욕탕 경기장 등등) 

    Asterix - 골족을 모델로 한 만화의 주인공

    Obelix - 아스테릭스의 친구

    로마평화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4세기 부터는 유럽북부와 동부에서 여러가지 이동하는 침략민족들이 남부로 가서 로마제국을 정복했다. 이 새로운 시대는 보통 침략시대라고 부른다. 침략은 부정적인 의미가 있어서 요새는 grandes migrations(침략민족의 대 이동)이라고 부른다.

    경제적인 이유관련해서 원래 있던 곳에서 살 수 없었고 다른곳으로 이사하게 된 것이다. 서기 100년 부터 500년 까지 서부와 남부에서 온 민족들을 볼 수 있다. 훈,비지고트,반달족 등등

    대부분 독일과 폴란드 스칸디나비아 쪽에서 온 게르만 민족들이었고나머지는 중앙아시아에서 온 터키,몽골 쪽 훈이었다.

    서로마제국멸망은  476년이며 이것은 중세시대의 시작이다. 대 이동은 제국멸망 100년 전인 376년이라고 보면 된다.

    376년부터 시작했던 것은 고트사람들의 침략이다. 고트족은 원래 스칸디나비아와 독일과 폴란드 북부에 있었는데 아직은 이유를 알수 없지만 동부로 갔다. 그리고 고트라는 민족은 두갈래 두 부족으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그리스와 이탈리아 로마까지 갔다. 일부는 서부로 갔다. 비지고트 사람들이 먼저 로마가서 로마를 약탈했던 것은 410년 이었다. 410년이라는 연도는 그 사건은 아주 중요한 것이 었다. 첫번째 로마의 약탈 원래 이 큰 로마제국의 수도는 문화가 없다고 거의 유목민같은 문화적으로 발달되지 않은 민족이 로마에 와서 로마를 약탈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보면 큰 충격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455년에 반달족은 독일에서 와서 프랑스 스페인을 통해서 지금은 튀니지 지역에정착해서 여러방향으로 지중해 쪽에가서 또 약탈했다. 또 로마에 가서 이번에는 완벽히 약탈했다. 로마의 건물들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더이상 로마는 로마의 수도로 사용할 수 없었다. 몇년 후에 이탈리아 반도로 넘어가서 이번에는 오스트로고트족이었는데 마지막으로 로마와 전투했을 때 오스트로 고트족들이 승리해서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게 되었다, 더이상 로마에는 제국이 있는 것이 아니고 황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대신에 오스트로고트족이 새로운 왕국을 건국 했다.로마말고 이탈리아를.

    비지고트사람들은 그동안 프랑스남부와 스페인에 정착햇다. 476년 이후에는 여기저기 새로운 왕국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로마관련된 영토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지역들이 있다. 프랑스 북부에서는 로마제국과 연결된 조그만 왕국같은 지역이 있었고, 그 뿐만 아니라 서로마 제국은 아무리 476년에 멸망했지만 동로마제국이 따로 있었고 그대로 유지했다. (중요!)

    동로마 제국을 보면 아프리카 북부 리비아 이집트 중동같은 경우에는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 등등 포함.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는데 현재에는 터키의 이스탄불이다. 1453년까지 동로마제국은 이어졌다.

    노란색은 비지고트가 건국한 왕국, 연두색은 또다른 이동 민족 버건디파란색은 게르만족. 이동하는 것과 관련된 부족은 게르만족 전체를 보면 하나는 프랑크라는 부족이있었다. 큰 왕국도 아니고 통일된 왕국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여러지도자들이 있었는데 클로비스는 466년부터 프랑크족을 통일 시키고 프랑크족의 첫 왕이 되었다.  프랑크영토에서 클로비스라는 사람은 녹색지역을 정복했다. 486년 전쟁의 승리로 511년 에 현재 프랑스 영토 거의 대부분을 정복했다.

    게르만민족은 나중에 가톨릭개종을 통해서 켈트족과 게르만족 프랑크와 갈루만족들이 통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중요!)

    클로비스는 첫번째 프랑크왕국의 첫번째 왕 프랑스의 역사학자들이 프랑스 역사를 보면 프랑스가 되기 전에 프랑크라는 왕국이었다면, 클로비스가 프랑스의 첫번쨰 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프랑크는 아직 프랑스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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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은 라틴어로 갈리아 라고한다. 골사람은 라틴어로 Gallus 라고 한다. 또한 Gallus라는 것은 수탉이라는 의미가 있다. 골 부족들의 분포 : 켈타/아키타니/벨가 노란색 땅은 이탈리아 로마의 식민지였다. 점점 로마사람들이 골족 영토로 가깝게 정착하고 싸우기 시작 했을 때 부터는 골 사람들이 자신들도 도시같은 것을 건설해야한다고 이해했다. 특히 성, 요새화된 성같은 것을 만들어야 된다고 이해했다. 줄리어스 시자 장군이 기원전 56년부터 골전쟁을 시작했을 때 부터는 시자의 부대들이 얼마나 빨리 골을 정복하는걸 보니까 골사람들 더이상 따로따로 농장에서 살면안되고 모아서 큰 도시나 성같은 도시에서 살아야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전쟁하기 위해서 연맹을 맺어서 다같이 싸워야 된다고 알게 되었다. 그래서 원래 국가가 없었던 골족에서 왕을 선출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원전 1세기 부터 생기는 것이 뭐냐면 오피둠이라는 말이 생겼다. 오피둠은 성이라는 뜻이고 원래 도시나 성이 없었던 골족사람들이 다른방식으로 살게 되었다는 뜻이다. 골 전쟁 때문에 골족의 문화가 완전히 변화했다. 기원전 52년에는 골사람들의 수도였던 알레시아전투에서는 골사람들이 패배했다. 이 전투로 골 전체적으로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사실은 골전쟁은 52년에 딱 끝내는것이 아니라 완전히 골의 영토를 정복하기 위해서 시자장군은 전쟁을 좀 더 해야했다. 51년에 끝났다. 51년 부터는 골이라는 문화가 없어지고 시작되는 새로운 문화와 시대가 골+로마 시대이다. 이 새로운 갈로 로마 같은 경우에는 새로운 로마제국에 소속되어있다. 첫번째 로마 황제의 사망이후의 도시이다. 첫번째 황제는 아우구스투스이다. 줄리우스 시자의 조카이다. 줄리우스 시자는 절대로마의 황제가 아니었다. 서기 14년에 아우구스 투스 사망했을 때 로마 제국의 모습은 딱 그거였다. 로마제국은 아주 큰 편이었다. 지중해 주변에 모든 나라들을 다 포함하였다. 영국에서 북아프리카 그리고 이집트까지 시리아 이라크 일부 까지 포함. 골은 그저 일부일 뿐이었다. 리옹은 원래 골 외의 수도였다. 아우구스투스 시대는 로마시대의 로마식 평화시대이다.(Pax Romana) 경제, 사회, 문화 등등 여러가지 분야에서 발달이 이루어졌던 시기이다. 그것 때문에 골족들도 팍스로마나 시대에 많이 발전했다. 파리 같은 경우에는 새로운 로마양식과 건물들을 많이 만들었다(큰 광장과 시장 대중목욕탕 경기장 등등) Asterix - 골족을 모델로 한 만화의 주인공 Obelix - 아스테릭스의 친구 로마평화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4세기 부터는 유럽북부와 동부에서 여러가지 이동하는 침략민족들이 남부로 가서 로마제국을 정복했다. 이 새로운 시대는 보통 침략시대라고 부른다. 침략은 부정적인 의미가 있어서 요새는 grandes migrations(침략민족의 대 이동)이라고 부른다. 경제적인 이유관련해서 원래 있던 곳에서 살 수 없었고 다른곳으로 이사하게 된 것이다. 서기 100년 부터 500년 까지 서부와 남부에서 온 민족들을 볼 수 있다. 훈,비지고트,반달족 등등 대부분 독일과 폴란드 스칸디나비아 쪽에서 온 게르만 민족들이었고나머지는 중앙아시아에서 온 터키,몽골 쪽 훈이었다. 서로마제국멸망은 476년이며 이것은 중세시대의 시작이다. 대 이동은 제국멸망 100년 전인 376년이라고 보면 된다. 376년부터 시작했던 것은 고트사람들의 침략이다. 고트족은 원래 스칸디나비아와 독일과 폴란드 북부에 있었는데 아직은 이유를 알수 없지만 동부로 갔다. 그리고 고트라는 민족은 두갈래 두 부족으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그리스와 이탈리아 로마까지 갔다. 일부는 서부로 갔다. 비지고트 사람들이 먼저 로마가서 로마를 약탈했던 것은 410년 이었다. 410년이라는 연도는 그 사건은 아주 중요한 것이 었다. 첫번째 로마의 약탈 원래 이 큰 로마제국의 수도는 문화가 없다고 거의 유목민같은 문화적으로 발달되지 않은 민족이 로마에 와서 로마를 약탈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보면 큰 충격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455년에 반달족은 독일에서 와서 프랑스 스페인을 통해서 지금은 튀니지 지역에정착해서 여러방향으로 지중해 쪽에가서 또 약탈했다. 또 로마에 가서 이번에는 완벽히 약탈했다. 로마의 건물들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더이상 로마는 로마의 수도로 사용할 수 없었다. 몇년 후에 이탈리아 반도로 넘어가서 이번에는 오스트로고트족이었는데 마지막으로 로마와 전투했을 때 오스트로 고트족들이 승리해서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게 되었다, 더이상 로마에는 제국이 있는 것이 아니고 황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대신에 오스트로고트족이 새로운 왕국을 건국 했다.로마말고 이탈리아를. 비지고트사람들은 그동안 프랑스남부와 스페인에 정착햇다. 476년 이후에는 여기저기 새로운 왕국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로마관련된 영토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지역들이 있다. 프랑스 북부에서는 로마제국과 연결된 조그만 왕국같은 지역이 있었고, 그 뿐만 아니라 서로마 제국은 아무리 476년에 멸망했지만 동로마제국이 따로 있었고 그대로 유지했다. (중요!) 동로마 제국을 보면 아프리카 북부 리비아 이집트 중동같은 경우에는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 등등 포함.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는데 현재에는 터키의 이스탄불이다. 1453년까지 동로마제국은 이어졌다. 노란색은 비지고트가 건국한 왕국, 연두색은 또다른 이동 민족 버건디파란색은 게르만족. 이동하는 것과 관련된 부족은 게르만족 전체를 보면 하나는 프랑크라는 부족이있었다. 큰 왕국도 아니고 통일된 왕국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여러지도자들이 있었는데 클로비스는 466년부터 프랑크족을 통일 시키고 프랑크족의 첫 왕이 되었다. 프랑크영토에서 클로비스라는 사람은 녹색지역을 정복했다. 486년 전쟁의 승리로 511년 에 현재 프랑스 영토 거의 대부분을 정복했다. 게르만민족은 나중에 가톨릭개종을 통해서 켈트족과 게르만족 프랑크와 갈루만족들이 통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중요!) 클로비스는 첫번째 프랑크왕국의 첫번째 왕 프랑스의 역사학자들이 프랑스 역사를 보면 프랑스가 되기 전에 프랑크라는 왕국이었다면, 클로비스가 프랑스의 첫번쨰 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프랑크는 아직 프랑스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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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댄스필름  - 마야 데렌, 멀리서 찍는 기록용 영상이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영상을 담았다.

        모던댄스는 퍼포먼스 아트와 굉장히 유사해져서 경계가 애매해 지기 시작한다. 

        퍼포먼스 아트는 굉장히 다양하게 많이 나타난다.

        Ex)백남준, 오노요코 등등

        컨템포러리 댄스 - 폴 테일러, 개념미술로서의 춤, 전위적인 작품을 많이 만듬.

        점점 춤이라고 할 수 없는 춤들이 등장한다. 렉처퍼포먼스

        강연같은 공연? 개념무용이라는 것들이 등장한다.

        Ex) 제롬벨- 베로니크 두아노

        발레리나는 무대속에서 철저히 인형같은 존재인데 이 무대에서는 발레리나가 등장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제롬벨은 나중에 사람을 없애 버리고 옷만 남겨서 옷이 춤을 추게 한다. 점점 해체 시켜 간다. 포스트 모더니즘 안에서 두가지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 지는 것들을 보인다.

        디자인과 춤 : 특수한 조명과 옷을 디자인한다. (긴치마가 시각적인 역할을 한다.)

        테드손 - 춤의 역사

        얼윈 니콜라이(기계와 추상) - 이마고, 크루서블

        순수 추상의 형태를 보여준다.

        머스 커닝엄(컴퓨터 테크놀로지를 활용) - 바이패드

        영화를 위한 안무를 만든다.

        빌티 존스, 머스 커닝엄 - 고스트캐칭

        국내의 안무가 <김효진> - 마담 프리덤

        <미디어아트> - 과학기술 발전에 의해 생겨난 예술장르로 새로운 매체 기술을 사용함. = 뉴미디어 아트, 매체예술

        시대에 따라 가변적

        1960년 대 이후 포스트 모더니즘과 함께 탈장르적 개념이 대두

        미디어 아트는 양이 굉장히 방대해서 다양한 미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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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용 예술과 디자인 : 움직임의 디자인, 그리고 신체

          무용예술과 조형예술의 공통점 : 

          시각예술이면서 동시에 시간예술이다. 

          미술에서 움직임이라는 것을 인지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미술은 항상 정지 된 것이라고 인지 되어왔다. 뒤샹의 샘도 혁신적이었지만 그것 또한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움직이는 예술은 키네틱 아트라는 것으로부터 왔다.

          알렉산더 칼더라는 사람이 키네틱아트의 선구자이다.

          이사람은 물체의 운동과 물체가 움직이면서 변하는 빛의 변화 등을 예술 작품으로 담았다.

          이사람은 몬드리안의 작품을 보고 이걸 움직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들게 되었다.

          키네틱아트는 많은 영역이 있고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이 제일 유명하다.

          화가들이 신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 자화상

          화가들은 얼굴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하나의 표상으로 인지하였다. 그래서 화가들은 자신의 신체를 가지고 자신의 화풍으로 그렸다.

          예술가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이 되거나 신체를 자신의 작품에 쓰는 것은 자신의 내면의 의식을 반영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자화상을 보면 그사람이 추구하는 바와 이상을 알 수 있다.

          발레는 모든 춤의 기초이다. 발레는 어떤 이상적인 미를 표현하고 있다. 발레는 원래 신체의 조형적인 부분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발레 동작은 끊어서 봐도 아름다워야하고 물 흐르듯이 이어져야한다. 발레는 보여주는 춤이기 때문에 몸매를 드러내야한다. 그래서 이상적인 신체적인 조건이 있다. 

          발레는 아름답고 조형적이다. 균형미,대칭미, 등등 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춤을 담는 무용사진 작가가 있다 - 로이스 그린필드

          춤은 한번 추면 사라지는 것이다. 과거에는 춤을 기록 할 수 없어서 사진과 그림으로만 남아있다. 로이스는 순간을 역동적이고 도형적으로 잘 포착을 했다. 이게 배포되고 많은 사람에게 보여지는 것은 사진의 형태로 보여진다. 

          무용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시각예술의 공통점에서 이루어 진다. 

          인체의 미학을 담은 디자인도 있다.

          춤의악보, 춤의 인포그래픽 - 무보법, 라바노테이션

          무용수의 관점에서 기록된 악보 같은 것들이다, 

          무용과 미술의 협업 - 무용과 미술은 시각성이라는 공통점에서 협업을 하기도 한다. (마사커닝햄과 로버트라우센버그)

          두가지의 서로 다른 장르가 만나서 정지되거나 무대위에서 공연되는 춤이 아닌 두가지가 같은 공간에서 있었다는 것이 굉장히 신선한 시도 였다. 그러나 단순히 두가지를 묶어놓은 꼴라보레이션에 가깝기는 하다.

           안무를 만드는 과정에서 디자인 적인 요소를 발견하는 과정

          -  안무 창작의 모형을 보면 관찰을 하고 시각디자인을 활용해서 반응을 이끈다. 

          - 무용과 함께 디자인의 영역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음.

          - 신체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부분이 우리가 종이위에보는 그림처럼 카메라 위에 보이는 화면처럼 더 이상적이고 더 조형적으로 보이는 각도가 있다고 한다.(배치)

          -선, 형태, 구성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를 고려한다. 무대라는 도화지 위에 사람이라는 재료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네거티브 스페이스,프레이즈,추상기하학양식,무대안무연출

          네거티브 스페이스 : 잔상 같은 것.

          프레이즈 : gif 같은 느낌, 작은 동작들이 하나하나 모여서전체작품을 구성한다.

          춤에는 디자인 요소가 전부 반영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플로어 무브먼트 - 디자인의 점과 같은 느낌

          스탠딩 무브먼트 - 디자인의 선과 같은 느낌

          이러한 동작들을 모아놓고 보니까 추상적인 형태가 보인다.

          바우하우스의 <오스카 슐레머>는 이러한 요소들을 가지고 형태춤이라는 자신만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

          단순히 건축과 관련된 공간이나 제품 시각예술 등 만을 다룬것이 아니라 음악이나 춤 연극 공연예술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그래서 바우하우스는 무대미술도 건축의 하나라고 보았다. 바우하우스는 이렇게 총체적인 시각으로 미술만 본것이 아니라 다른 영역으로 확장해서 보는 시도를 많이 하였다.

          가장 중요한 <3부작발레> 추상무용작품을 남겼다. 기초적인 미술지식들을 활용하면서 모든 분야들을 다 다룬다. 이사람이 왜 이런걸 다 다룰까 하는 의문은 작품을 보면 이해가 된다.

          이 작품은 나중에 무대, 영상 들의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실제로 슐레먼은 이 작품을 만들 때 예술과 기계의 통합을 담았다. 그 당시에 기계적인 생산이 많아지면서 기계에 대한 찬양이 많았었다. 그래서 슐레먼은 인간을 완벽한 기계에 형태라고 생각했고 인체를 기계적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바우하우스의 이념을 가장 훌륭하게 표현한 것 이다. 

          무용의상 같은 것들도 의상으로 인해 안무가 빛나듯이 춤을 더 부각 시킬 수 있는 기능들이 있다. 의상 디자인 공간 디자인 모두 공연,무용의 하나로써 인지하고 만들었다.

          표현주의와 기능주의 의 대립을 보여준다. 오스카 슐레먼은 인간과 공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했다. 신체의운동을 통해서 몸을 이용하는 이런 것들을 중요한 이념으로 삼았다. 춤이라고 하는 것은 공간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사람이 공간에서 어떻게 배치되어있는 지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다.

          공간,막대,판 무용 

          앞에 미술적인 이름을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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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시대가 끝나면 서양에서는 모더니티가 시작되는데 몯더니티에는 여러 단계가있다.

            인류의 역사에는 제일 긴 시대는 구석기시대였다. 그리고 호모사피엔스(인간)는 구석기시대부터 있었다.

            서구,서양 중심으로 보는 역사 이지만 지역마다 이런 시대들이 다를 수 있어서 유럽중심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중국,아프리카,인도네시아,남미 등등 대륙마다 지역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 기준이 있어야 한다.

            전부 기원전 시대이다.

            Homo sapiens 

            homosapienssapiens/homo neanderthalensis 

            두종류가 있었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현재는 구분을 포기해서 네안데르탈인은 더이상 호모사피엔스가 아니라고 본다. 인류학적으로 보면 여러 homo들이 있는데 우리는 homosapiens 라고 하고 또 다른 homo가 옛날까지 있었는데 우리보다 일찍 없어졌다.그 homo는 homo neanderthalensis. 기원전 15만년 전에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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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페스

              이산

              손에 장갑을 껴야 된다 안그러면 잡아감

              지하드

              사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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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시간전

                팀북투 영화에나오는 등장인물표 만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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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시간전

                  Tolérance / rigueur 를 보여주는 사람들 

                  Homme/femme 으로 나누기 이런 표를 통해서 쉽게 해설 가능할 것이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이야기에서 특별한 역할이있다.(fontion) 여러가지 비슷한 역할들을 모아서 아니면 반대되는 역할들도 모아서 비교하면 구조를 쉽게 밝힐 수 있다. 보통 이런 기능적인 분석방법은 영화계 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게 아니라 여러가지 텍스트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남자,여자 좋은사람,나쁜사람으로 간단한 표를 만들어서 기능과 관련된 기준을 찾을 수 있으면 표를 구체적으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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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팀북투(2014)

                    모리타니에서 촬영하였고 말리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말리에서 촬영할 수 없었다.(너무 위험해서)

                    팀북투 (tombouctou) - 도시가 거의없는 사막지역, 사하라 산맥. 식민지 시대에 인위적인 국경들을 만들었다. 예전에는 국가라는 개념이 없어서 왔다갔다 할 수 있었다. 알카에다 같은 단체들이 이동할 수도 있다. 팀북투 주변은 사헬지역이다.

                    뚜아렉(touareg)사람들이 영화에 나오는데 이사람들이 쓰는말은 (tamasheq)이다. 이런 나라에서는 아프리카 북부 마그랩과 흑인들이 사는 아프리카는 아프리크 누아르 라고 한다.

                    팀북투의 문제는 중세시대 때 아주 문화적인 도시였는데 예전에 이슬람교를 공부하는 학자들도 많았다. 문서의 문화가 있었다. 이슬람교 성인들의 무덤도 많이 있었다. 점점 사막화가 되면서 사하라사막이 커졌다. 더 이상 말리의 중요한 지역이 아니고 그냥 조용한 지역이 됬다. 서양에서는 팀북투에 대한 전설이 많았다. 어디있는지 몰라서 서양의 탐험자들이 17세기 부터 아프리카에 가서 이 전설의 도시를 여러번 찾았다.

                    도시의 유적 같은 것들도 많이 없어서 실제로 가보니 실망하였다.

                    그러나 팀북투에는 아직도 이슬람교와 관련된 중요한 문서들이 많이 남아있다.

                    점점 먹고살기 힘들어지자 젊은 사람들이 많이 is 나 알카에다로 전직 하였다.

                    그 뒤 팀북투로 가서 사람들을 강제로 통치하면서 샤리아 등의 법률로 사람들을 식민지배하였다. 강제로 베일 착용, 축구경기금지, 노래듣기 금지.

                    나중에 프랑스와 말리 군대가 많이 몰아냈다.

                    팀북투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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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동을 만드는 시대부터 역사라고 칭한다.(청동기시대)

                      옛날에는 역사학자들이 어떻게 구분했냐면 문자같은 것이 있는 것부터 역사가 시작된다고 했지만 문제점이 뭐냐면 골족같은 민족은 아무리 기술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발전이 잘된 민족이었는데도 글자를 사용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아서 역사가 없다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년전부터 기준을 바꿔서 역사라는 것은 청동기가 시작될 때부터 역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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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역사>

                        1. 프랑스의 역사에는 프랑스 학생이면 누구나 알아야 하는 사건들이 있다.
                        2. 그 중 제일 유명한 사건들을 이 슬라이드에 그림으로 표현했다.
                        3. 역사적인 왕들과 사건들을 다 알아야한다.
                        4. 이런 인물들을 통해서 프랑스사람들이 국민으로써 공동 역사와 과거를 구성시키는 것이다.

                        중세시대는 서로마제국의 멸망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매우중요!) 중세시대는 1453년에 종말으로 본다. 프랑스 대혁명 :1789년 800년 카를로스 대제의 통치의 시초(황제의 시작) 1914년 부터 1차세계대전 4년간. 1939년 2차세계대전. 1962년 프랑스식민지제국의 탈식민지화 끝(더이상 프랑스 식민지 x)

                        프랑스는 중세시대가 끝날 때 한국에서 조선시대 초기. 한국에서는 문화적인 혁명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명한 유교 철학의 부흥시대. (16세기)

                        18세기 초부터 한국에서는 중산층이 등장하는 시대이다. 역시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18 19세기는 바로 부르주아 세기라고 불렀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 시대 때 프랑스는 프랑스 식민지제국의 극치로 볼 수있다. 프랑스 같은 경우는 1945년 부터 전쟁 때문에 파괴된 나라를 재개발하기 위해서 영광의 30년이라는 시대가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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