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jiseoul(모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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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와 국경을 통해서 국가의 주권을 얻을 수 있다.

정치적 조직은 읽기만 함.

좌측이 좀 물질 적인 것 EX) 영토

우측이 좀 추상적인 것.

국민이나 이런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선택으로 생긴 것이다.

그리고 서로 같이 살고자 해야하는 욕망이 있어야 한다.

국민은 전통의 발명에 기초한다. 전통의 발명의 예시는 음식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음식역사 김치는 사실 엄청 오래된 게 아니라, 20세기 부터 많이 바뀌었다. 전통이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바뀌면서 생기게 된다. 

국민의 토대. 상상된 공동체. 루이14세가 굉장히 큰 영향력을 끼쳤다. 

루이14세는 개인통치의 시초. "짐이 곧 국가다." 이 말은 루이 14세의 정치관을 요약해서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왕권신수설 = 왕의 권력은 신에게 받은 권력이다.

국민과 국가의 중앙집권화 = 세금 관련된것은 전부 수도에서 운영한다.

궁정사회 = 귀족이면 시골에 있는 성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파리에서 왕 주변에 살아야 했다. EX) 베르사유궁전

태양왕 = 루이14세는 자기가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서 무대에 직접오르기도 했다. 

구두 = 무용용 구두

취하고 있는 자세 = 보통 왕이 취하는 정자세가 아니라 춤출 때 하는 자세. 

- 정치를 쇼처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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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종교전쟁 때문에 유럽에서는 큰 변화가 생김. 프랑스는 낭뜨 지역이 평화가 되었지만 아까 말했듯이 중앙유럽상황을 보면 아주 복잡한 상황이다. 여기있는 지도를 보면 1648년 전이다. 17세기 초기의 유럽의 상황이다. 파란색은 프랑스이고 빨간색은 스페인 제국 관련 영토들이다. 이탈리아남부 시칠리아 등등. 이 제국에서는 몇백개의 조그만 국가들이있다. 이 국가에는 새로운 황제들이 있는데 새로운 황제를 선출해야 할 때는 왕과 왕자들이 다 모아서 새로운 황제를 투표로 선출한다. 그러면 일단은 아주 왕정체제는 아니라고 볼 수 있고 이 새로운 황제의 왕관을 위해서 사람들이 많이 싸우기도 하고 16세기 중반 부터는 이지역에서는 종교 때문에 내란들이 많이 발생했다. 이 지역에서는 종교전쟁에다가 또 정치적인 여러가지 이유가 있어서 정치적인 전쟁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 지역의 상황이 아주 복잡해졌다.

    그래서 특히 이 지역에서는 지도를 보면 아주 조그만 국가들이 여러개 있어서 국가들이 독립적으로 자체적으로 운영하면서 동시에 제국을 가지고 있어서 애매했다. 이런 여러가지 아주 다양한 조그만 국가들을 통합하고 다같이 한 제국에서 통치하기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종교 갈등 때문에 이 신성 서로마 제국에 있었던 모든 근본적인 문제들이 발발했다.

    이 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조약들이 있었다. <베스트팔렌 조약> 30년 전쟁은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서 끝낼 수 있었다. 프랑스같은 경우에는 유럽에서는 새로운 힘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는 바로 옆에 있던 신성 로마제국이 전쟁 때문에 약화 되어서 점점 프랑스 왕의 권력이 많이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17세기 후반 부터는 루이 14세가 왕이 되어서 프랑스를 오랬동안 통치했다. 5살에 왕이 되었다. 18살이 되었을 때는 직접 나라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1650년대 말 1660년 초에. 그 때부터 루이14세가 프랑스를 직접 통치하기 시작했다. 1715년 까지 살았으며, 1643년 부터 1715년 죽을 때 까지 72년이었다. 그래서 이 왕을 통해서 프랑스의 전체적인 모습이 많이 변했다고 볼 수 있고 이 왕은 전쟁을 통해서 프랑스의 영토를 지정했다. 지도를 보면 루이14세 부터는 현 프랑스의 모습이 형성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녹색부분은 루이14세가 전쟁을 통해서 얻었던 새로운 지역들이다. 유럽에서 이런 중요한 지위를 가진 프랑스를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루이14세부터는 다른 유럽국가들의 모델이 되었다. 온 유럽은 파리를 쳐다보며 프랑스사람들이 어떻게 살고있는지, 행동하고 있는지 프랑스의 유행들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루이14세는 절대주의(absolutisme)의 대표적인 군주이다.

    절대주의란? 절대주의의 뿌리는 17세기 초반부터 생겼다. 17세기 초반에는 다양한 국가들이 조그맣게 존재해서 아주 복잡했다. 원래 신성로마제국은 합스부르크왕조였다. 그 때부터는 종교전쟁 때문에 이 왕조가 많이 약화 되었고 점점 이 나라의 다양성이 약점이 되었다.

    프랑스는 점점 중앙집권화가 되어서 중앙집권화가 전혀안된 국가들은 통치하기 어렵고 경제도 어렵고 법률도 통일 시키기 어렵고 일관성이 하나도 없어서 나라를 발전시키기가 어려웠다. 전쟁이 끝날 때는 베스트팔렌 조약들을 통해서 1648년에 전쟁을 끝내고 국가들은 이 신성서로마제국을 구성하는 350개의 국가들은 전부 독립성을 인정 받았다. 왜냐하면 각 국가마다 자기의 자치성, 독립성을 유지하고 싶어서 특히 종교를 위해서 어떤나라는 대부분 사람들이 천주교 사람들이니까 천주교를 지지하고 싶고 옆에있는 나라는 조금 더 프로테스탄트인 나라가 있어서 국가의 종교를 개신교로 하고 싶고 같은 종교의 자유를 위해서 신성서로마제국을 구성하는 수많은 국가들이 독립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들의 독립성을 국가로서 인정받기 위해서 베스트팔렌 조약을 준비했을 때 법적으로 국가라는 것을 잘 정의해야 했엇다. 17세기 초 까지는 국가라는 개념이 있었지만 고정된 개념은 아니었다. 국가는 영토와 관련된 것인데 이 개념에는 중요한 것이 국경이다, 그 때까지는 국경이라는 것은 어느정도 까지 유연한 개념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중세시대에는 국경들이 너무 자주 바뀌니까 국경이라는 것은 지금처럼 벽으로 라인으로 선으로 지시된 것이 아니었다. 옛날에는 정확한 지도도 없었고 그래서 국경이라는 개념이 애매했는데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현대적인 국가의 개념들이 많이 잡혔다. 국가는 국경있는 영토, 땅 그 나라에서 사는사람들 종교 등을 포함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종교같은 것은 중요한 이야기니까 이 국가에 대해 얘기할 때 그것까지 포함해야 되었다. 그래서 점점 새로생긴 개념이 뭐냐면 바로 "국민국가"이다.

    국가 + 국민 = 그사람들이 지니는 새로운 nationstate라는 개념이 발생. 정치학을 공부하면 보통 역사학자들이 현대적인 서양식 국민국가라는 것이 이 베스트팔렌 조약부터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기억할 만한 연도이다.(1648년_매우중요)

    17세기 부터 역사적으로 보면 국가간에 여러가지 갈등 전쟁들이 발생했다고 볼 수있다. 20세기 부터 이 국민국가개념이 비판을 많이 받아서 초국가주의, 국가를넘어가는 개념이 생기면서 transnationalisme 이라는 것이 생겨서 새로운 개념을 대신해 발명해야 한다는 경향이 생겼다.

    옆 나라들이 약화 되어서 프랑스는 점점 절대주의를 이루게 되고 정치적인 우월이 시작되었다고 생각 할 수 있다.

    국가란? 현대적인국가, 예전에도 국가들은 있었지만, state 라는 단어도 있었지만 말의 의미가 달랐다. 보통 나라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state는 조금 더 법학적인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국가는 역사적인 구성된 것이다. 즉, 언제나 예전에 과거에 있었던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해야한다. State가 없는 국민들이 많았고 여전히 존재한다. 국가라는 것은 필수적인 의무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것 때문에 그것을 구성이라고 한다. 역사가 만들었던 것이라고 생각해야한다. 이 현대적인 서부의 state국가는 봉건시대에 기원한다. 중세시대 프랑스 같은경우는 프랑스는 단지 모자이크 같은 여러가지 공작,백작같이 지배하는 땅이 많았고 왕이 가지고 있는 땅이 별로 없었다. 그 당시의 state는 군주제였다. 왕이 너무약하고 왕아래의 봉신들이 왕보다 더 부유하고 권력도 많고 군대도 있고하니까 중앙집권화된 국가가 없었다. 그러나 12세기 부터는 전쟁을 통해서 전쟁을 안할 때는 동맹을 통해서 동맹은 보통 결혼, 다른나라의 왕의 딸들과 결혼해서 동맹을 맺는 것이다. 프랑스는 어떤 봉신의 영토를 정복하면 그 아래에 공작의 땅을 두면 바로 왕실의 재산이 되는 것이다.

    동맹은 버건디 지방을 잘 기억. 물론 그것은 점진적인 과정이다. 몇세기가 걸렸다. 점진적으로 되는 것은 독점화, 모노폴리이다. 한기구가 한 군주가 모든 권력들을 가지는 것이다. 독점이란 왕들은 전쟁을 하기 위해서 세금을 수입한다. 그래서 세금을 통해서 돈을 벌어서 전쟁을 할 수 있다. 왕들이 이 세금을 수익을 위해서 아주 중요한 수단으로 발견해서 나머지 봉신들이 이런 세금을 받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이것은 왕의 독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전쟁을 위해서 군사가 필요하다. 병사도 필요하고, 그래서 군사라는 것도 왕의 책임이 되는 것이다. 점점 왕이 필요로하는 군사 군대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세금을 통해서 군사 지원하고 이것도 왕의 독점이 되었던 것이다. 무슨 뜻이냐면, 전쟁하기 위해서 세금을 받아야하는데 그러나 세금을 최대로 수입하기 위해서 왕은 시민들을 감시하고 강제로 세금을 내게 하는 것이 필요해서 바로 왕이 만들어야 하는 것은 임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군사. 군사와 세금이란 상호관계가 있어서 왕의 독점, 국가의 독점에 기반해 있는 것이 전쟁이다. 왕은 어떻게 전쟁하는 것을 정당화 시킬 수 있을까?

    국민한테는 우리가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군사 지원하기 위해서 세금을 수입할 수 밖에 없다. 세금이 필요하다. 이렇게 얘기해서 결과적으로 세금은 평민들을 보호하기위한 돈이라고 얘기해서 세금은 전쟁을 통해서 국민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런 식으로 정당화를 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현대적인 국가의 풀이에 있는 근본같은 원칙이 뭐냐면 전쟁과 세금 둘다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야한다. 세금을 전쟁을 통해서 정당화를 시킬 수 있고 그 다음에 마찬가지로 전쟁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런 식을 정당화 시킬 수 있다. 이렇게 되서 군주의 독점은 군사와 세금이었다.

    그렇다면 전쟁을 관리하기 위해서 세금을 더많이 수입해야 하니까 세금은 더이상 지역적으로 관리 할 수가 없었따. 예전에는 지역적으로 백작이 직접 자기의 영토에 있는 평민들한테 세금을 받았을 때 직접관리하기가 쉬웠는데(수확의 7프로를 받는등) 그러나 더이상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먼 지역에 있는 왕이 세금을 걷기 위해서는 행정기관이 필요했다. 즉, 관료주의의 필요성 이 대두했다. 그것은 중세시대에는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17세기 부터는 프 랑스가 전체적으로 군주의 영토가 되어서 아래에 있는 백작들은 딱히 관리할게 없었다. 이런 세금을 걷기 위해서 행정기관을 만들어야 했다. 공공기관의 탄 생.

    왕과 평민사이의 행정기구의 탄생이다. 점점 현대적인 국가를 지역적으로 직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게 아니라 조금 더 객관적으로 행정적으로 관리해야하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는 17 18세기에는 산업적 자본주의가 탄생하기 시작하고 그 다음에 점점 종교전쟁을 통해서 종교와 권력의 정치분립이 현실화 되었다.

    즉, 왕의 권력이 더 강화 되었다고 보면 된다. 국가에는 점점 더 중요해 지는 것이 뭐냐면 자본, 세금 , 산업적 제본, 전쟁, 독점화, 중앙집권화 였다. 이런 현대적인 국가를 보면 어떤 성향이 있냐면 바로 제도화 systemastation 이었다. 점점 이런 나라의 여러가지 분야들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행정기관들이 조금조금씩 자치적으로 시작했다. 그것 때문에 이런 계열들은 위계같은 것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국가의 자치적인 존재가 되고 민간사회가 국가와 분리되는 것이다. 평민들이 국가와의 관계가 이런 큰 분리가 되어서 국가라는 것은 멀리 있는 추상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면 점점 17세기 부터 현대적인 국가가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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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 전쟁, 옛날 천주교 방식을 반대하는 사람들. 천주교보다 단순하고 성실한 종교를 원해서 개신교 신자들이 원했던 것은 쓸데없는 사치 예를들면, 금장식 이나 스테인드 글라스 교회가 필요없다고 생각되어서, 교회는 하나님을 위한 공관이니까 꾸밀것 없이 소박하게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했따. 개신교의 교회들을 보면 장식이 아주 간단하다. 이것은 puritaniseme 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순수한 종교를 위해서 순수한 성실한 행동, 윤리 가치가 있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야 된닥 생각했다. 물론 로마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반종교 개혁 -  그때부터 유럽에서는 종교 개혁, 반 종교 개혁 때문에 여기저기 갈등이 발발하기 시작함, 이런 갈등들은 내란 내전이 되었고 종교 전쟁으로 이끌었다. 보통 s가 붙어있는데 온 유럽에서는 여러나라에서 동시에 여러번 일어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프로테스탄트 사람들을 위그노 라고 불렀다. 이 지역에서는 큰 전투들이 생겨서 아주 폭력적인 내란이 생겨서 온 나라가 혼돈스러웠다. 원래 프랑스 왕족은 바로 기독교, 천주교 이다. 프랑스는 로마 교회와 깊은 관계가 있어서 물론 프랑스왕들이 카톨릭 등 천주교를 지지했다. 

      프랑스에서는 큰 사건이 일어났다. <성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프랑스에서는 하루하루의 성인들을 위한 축일이 있다. 그날은 성 바르톨로메오의 축일이었다. 왕의 엄마는 카트린 드 메디씨 였다. 원래 이탈리 출신 공주였는데 프랑스에 와서 앙리 2세와 결혼하여 아들3명 딸 3명 낳고 아들3명은 전부 왕이 되었다. 딸은 다른지방의 왕자와 결혼해서 왕자가 나중에 까트린드 메디씨의 아들들이 다 죽어서 어쩔 수 없이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 그사람이 앙리 4세이다. 앙리4세가 왕이되기 전에 나바르지방을 다스렸다. 이사람은 나중에 까트린드 메디씨와 앙리2세의 딸인 마르그리트와 결혼한다. 별명은 마르고. 마르고와 앙리드나바르의 결혼식이었다. 마르그리트는 프로테스탄트 이고 앙리드나바르는 천주교여서 다른 종교의 결혼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카트린드 메디씨는 프랑스에 권력이 있었던 모든 개신교 신자들을 죽이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이날은 1598년 성 바르톨로메오의 축일은 학살로 기록되어있다. 샤를 9세가 왕이었고 어머니였던 카트린드 메디씨는 밤부터 파리와 지방에 있었던 프로테스탄트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몇만명이 학살되었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려면 지금은 설명할 수 없지만 시간이 되면 아주 재미있는 영화가 있다.  학살 때문에 프랑스 종교전쟁의 극치라고 볼 수 있다. 갑자기 이 전쟁들이 과도했다고 생각되어서 한꺼번에 몇천명이 죽어서 사실은 프랑스인에게는 충격적인 행사였따. 개신교 뿐만 아니라 모든사람들에게 충격적인 행사였다. 

       그떄부터 종교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때부터 평화롭게 살아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떄뿌터는 프랑쓰 쫑꾜쩐쩅뜰이 없어졌다고 볼 수 있따. 1598년에 칙령을 지시했다. 이 칙령이 뭐냐면 프랑스에서는 종교의 자유, 특히 아직은 이슬람이나 불교같은 종교들이 없어서 기독교의 여러가지 교파들이 예를들면 천주교, 프로테스탄트같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수 있는 법이 있었따. 

       사실 그 이후에도 조그만 지역적인 갈등이 여기 저기 발생했다. 프랑스에서는 끝났지만 유럽에서는 계속해서 생겼다. 유럽에서는 그 시대에 아주 중요한 사건이 뭐였냐면 그건 30년의 전쟁이다. 그건 다음세기에 일어났던 전쟁이다. 대충 지도를 보면 노랑색으로 되어있는 것은 카톨릭 천주교 나라들이다. 이런 별 표시가 있는 것은 유태인들이 있는 나라들이고 분홍색으로 되어있는 것은 대부분 다 프로테스탄트이다.

      녹색은 오스만제국이고 이슬람교 사람들이었따. 빨간색은 30년 전쟁의 지역이었다. 프랑스 역대의 신성로마제국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오스트리아 독일 같은 지역이다. 

      1492년부터 크리스토프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한다. 콜럼버스는 발견 후 여러번 아메리카에 갔다. 

      자크카르티에 캐나다에 있는 생로랑이라는 강을 따라가서 캐나다를 처음으로 탐험했다. 이 새로운 영토를 프랑스 왕을 위해서 정복하였다. 그 때부터 캐나다 북부 지방에서는 퀘백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생겼다. 물론 세계지도가 그 때부터 변하기 시작하고 더이상 유럽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고 발견하고 그 때부터 새로운 차이가 많은 다른 문화권을 발견해서 아까 몬타뉴를 발견했을 때 얘기했듯이 점점 유럽사람들이 조금더 상대적인 사상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특히 습관 문화 언어 이런것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알게 되었다. 이런 대발견 시대가 물론 문화 지식 과학 등 여러분야에 큰 영향이 있었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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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에서 인쇄기술이 발달해서 기술을 많이 전파했다. 그래서 15세기 말부터 책의 생산이 많아졌다. 귀족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책 구매가 가능하였다. 그 때부터는 좀 더 보편적인 비평사상들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구텐베르그의 인쇄기술을 발명하는 것보다 1439년에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시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콘스탄티노플 명망을 통해서 서유럽 지식인들이 오랫동안 읽을 수 없었던 그리스와 옛날 서문들을 얻어서 오랫동안 읽지 못했던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과학자들의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즉 휴머니즘은 옛날식 로마니즘의 부활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이성주의의 중심 그리고 이성을 통해서 현대적인 과학(베이컨,갈릴레오 등의 발견)의 발전을 이끌었다. 이것은 종교적인 관념들을 약화 시켰다. 완벽한 인간은 전체적으로 몸과 정신까지 포함해서 잘 개발 해야한다. 그때부터는 개인의 발달, 즉 자기개발의 시대가 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라블레 - 원래 의사였다, 몽펠리에 쪽에 살았는데 의사를 하면서 여러 소설들을 썼다. 이런 소설들은 아주 독특하고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장르들을 만들었다. 유토피아 일반적인소설 코메디 여러가지 소설 등의 여러가지 장르들을 섞어서 통합적인 소설들을 썼다. 이런책들 속에 라블베는 자기의 가치관을 다 표현했다. 라블레의 사회평등에 대한 의견 등등 그런것들을 자기의 소설을 포함해서 표현했다. 처음으로 프랑스문학에서는 이 소설들을 통해 현실(리얼리즘)을 느낄 수 있다. 일상생활의 냄새까지 느낄 수 있는 특징. 라틴어로 쓰지 않고 

        *대부분작가들이 사용하지 않았던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롱사르 - 프랑스어를 문학적인 언어로 바꾸기 위해 노력함. 그래서 시를 프랑스어로 쓰기 시작함. (롱사르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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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에서 발견하는 디자인 조형과 관점>

          과거에는 글과 이미지는 다른것이다라고 이분법적인 생각이 있었다.

          이미지는 보여주는 일을 하지만, 이미지라는 코드의 영역을 벗어나서 무언가를 부인하는 일을 할 수없다. 이미지는 한 그루의 나무를 표현할 수 있지만 이런 말을 할 수는 없다.

          아름다운이미지를 봤는데 말로 형용할 수 없다. 글자로, 말로 환언할 수 없는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무언가, 글로 표현이 안되는 무언가, 사실 글과 이미지는 다른 것이 맞긴하다.

          사람들은 말이라는 언어가 글쓰기와 사고하는 방식으로만 이루어 진다고 단순하게 보는 경향이있다. 하지만 말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기호들이 어떤식으로든 언어와의 관계 속에 놓여있다.

          그림은 어디서 끝나고 글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모호하다.

          기표와 기의란?

          사물의 본질(ex. 나무하면 떠오르는 줄기가 있는 푸른 식물) =  기의

          어휘,문자,합의된 언어 = 기표

          문학예술은 시간을 가지고 그것을 읽어가야 하는 장르이다. 음악처럼 시간성을 가진다. 서사가 있어야한다. 문학은 활자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다. 활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더 중요한 장르이다. 

          시각예술과 문학예술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특징은,

          문자활자, 커뮤니케이션, 인쇄매체 이다.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중심이 되는 언어이다. 대화를 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이 물건이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 소비자들이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가독성, 기능성을 포함하는것을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한다.

          문학도 마찬가지로 의미가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어야 한다.

          인쇄매체 = 그림 or 책

          책은 문학의 영역이지만, 책커버를 디자인하는 것은 디자인의 영역이다.

          시각디자인, 그래픽디자인, 커뮤니케이션디자인 등 다양하게 불린다.

          동양에서 ,

          서화일치론 = 글과 그림은 기원이 같고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서양의 개념미술, 글로써 미술을 표현한것이 1960년대인데 동양은 당나라 때 부터 글과 그림의 본질이 동일하다는 것을 인지하였다.

          문인화론 = 서화란 작자의 인품반영이다.

          현대미술의 개념과 본질이 북송시대 때 이미 나옴.

          문자는 보았을 때 한번 머리속을 거쳐야 하지만, 이미지는 바로 떠오른다. 그래서 글자와 이미지가 같이 쓰인다면 한번에 떠올릴 수 있다.

          <1910년 이후>

          -  아방가르드 예술의 주무대

          - 전통과 분리되어 완전히 새롭게 시도하는 예술

          -  문학의 언어가 조형미술 속으로 침투

          - 문학에서의 시각적 구성이 현대문학의 비중있는 요소로 주목

          - 서로 독립된 두 예술 사이의 관계로 보기보다 상호적 침투가 나타남                       (배타적관계>혼합관계)

          - 개념미술, 플럭서스 운동이 많이 일어남. 전반적인 예술의 분위기가 많이 변화함.

          개념미술 ? 개념과 아이디어 자체를 예술로 바라보고자 하는 미술.

          뒤샹이 변기를 가져다 놓은 것, 서명을 한 것 외에 뒤샹이 한 것은 없다. 손수 조각을 깎고, 유화를 찍어서 캔버스에 바르는 노동력이 들어가는 작품제작과정이 모두 생략되어버림. 

          뒤샹이후로 개념자체를 미술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탄생. 더이상 내가 손수 안만들어도 되고 아이디어만 제공하는 기획자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그래서 작품의 소유 개념이 약화되었다.


          <개념미술 : 조지코수스의 세개의 의자>

          - 개념미술의 아이콘

          - 실제의자가 있고, 사진속의 의자가 있고, 사전적 의자의 정의가 있다.

          - 이 세가지가 각각 다른 공간으로 해체되고 분해되어 작품이 사라진다.


          <개념미술 : 오노요코의 Snow piece>

          - 시각적인 것이 사라지고 글자만 남음.

          - 지시문작업이라고도 한다. 작가의 아이디어와 개념이 중요하다면 그냥 글에              적으면 되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만듬.

          -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이 글을 읽고 스스로 상상하여 이미지를                만들도록 유도함. 그게 회화이고 굳이 그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함. 

          - 시인도 언어로 그림을 그리니까 화가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 오노요코는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작업을 많이 했다.


          <개념미술 : 에드워드 루샤>

          -  활자로 작업하는 개념미술 작가.

          - 이사람의 작품을 전시했었는데 작품이 전부 다 글자로만 이루어져 있음.

          - 글자가 가지고 있는 힘이 미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개념미술 : 바바라 크루거>

          - 언어보다 직관적인 표현은 없다.  ex) 친구에게 밥을 사달라고 할 때 그림을 그린다기 보다는 말로 하는게 제일 빠르다.

          -  그래픽 디자인을 하다가 자신의 재능을 살려서 개념미술가가 되었다.


          *구체시

          - 타이포그래피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양상.

          - 시의 본문이 주제를 시각적인 형태로 나타내도록 하기 위해 시행등에 변화를 주는  형식.


          *시각시

          - 시를 그냥 읽을 때 보다 형태가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음.


          *디자인언어

          - 디자인언어에 있어서 문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 우리가 집에 들어가는 방식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라는 것은 우리  가 살고 있는 곳이 장소이지만 몇가지 지시언어들이 존재한다. 문이라는 것은 어느 공간안으로 들어가는 곳이라고 인지할 수 있다. 문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다.

          - 다른 예로는 그릇이라는 걸 보면 뭔가를 담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디자인  이라는 것도 그렇다. 사람들이 보고 바로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좋은 디자인이다. 설명서가 없이도 사람들에게 바로 이해가 되는게 좋은 디자인이다. 

          - 특정한 메시지가 생기고 해석될 수 있도록 하는 것. 비구술적. non-verbal.

          -  성능이 좋은 냉장고라는 제품을 광고 할 때 냉장고가 성능이 좋다는 걸 글로 적거나 설명하기 보다는 이미지를 나열한다. (ex 냉동기능이 탁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북극에서 떠는 이미지를 사용할 수 있다. 연결고리를 가지고 이해할 수 있도록.)

          - 사인언어, 행위언어, 사물언어

          - 사인언어 : 쉽게 볼 수 있는 사인이나 광고, 타이포그라피, 주로 2차원 평면에서 표현되는 것을이 주를 이룸.

           - 디자이너는 상품을 만들 때 이런 언어들을 사용해서 소비자들과 대화를 한다.

          - 타이포그래피는 소비자와 수용자가 대화를 하는 과정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


           *타이포그래피

           - 문자나 기호를 중심으로 한 2차원적 표현, 사진까지도 포함한 구성적인 디자인의     전체, 그래픽디자인과 동일 시 되기도 한다.

          - 주어진 정보를 심미적으로 재배치하고 가공하는 과정.

          - 실용성( 정보와 지식의 전달과 커뮤니케이션)

          - 심미성( 감성과 감정을 드러내는 시각적 표현)

          - 두가지가 모두 충족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타이포그라피이다.

          - 하지만, 이것만으로 정의가 완료되는 것은 아니다.

          - 타이포그라피는 백색과 검정색이 상호작용 하는 그림이다(활자와 공간, 백색과 검정색이 상호작용하는 것, 단순히 글자를 장식한다거나 가독성을 높힌다는 차원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타이포그라피는 종이위를 움직이는 현상 즉 생명력을 가진다, 이 인쇄가 안된 부분들 여백들도 디자인이다)

          - 그 화면위에 개체를 위치시킴으로써 나머지 공간과의 상호작용이 있다. 텅빈공간자체도 무수하게 채워져 있는 것이다. 화면을 꽉 채우는 것보다 화면을 비우는게 더 어렵다. 


          *국제 타이포그래피 스타일

          - 1950년 대 스위스, 독일에서 발생한 디자인 운동

          - 여러 이미지를 활용했지만, 폰트나 규칙들이 굉장히 질서정연하다.


          *요제프 뮐러 브로크만

          - 타이포그래피의 대가

          - 자유로운 형식안에 굉장히 질서정연한 규칙들을 사용했다.


          *헬베티카 Helvetia

          - 스위스 모더니즘과 동일 시 되는 서체

          - 이 서체는 중립적인 서체이다. 

          - 통일성과 질서를 부여하며, 굉장히 명료하다.

          - 공기와 같다고 표현한다.

          - 어디에 사용해도 크게 무방하다.


          *그리드 시스템 

          - 화면을 분할해서 일종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인지될 수 있고 정보를 효율적으로 제공함.

          - 그리드시스템을 배우지 않고서는 디자인을 배울 수 없다.

          - 책, UI 등 보이지 않는 모든 인쇄물이나 2차원 평면속에 전부 그리드시스템이 들어있다.

          - 에밀루더는 정보를 글로 전달하는 것이, 무슨일이 있더라도 이 의무만은 면제될 수 없다고 했다. 만약 읽을 수 없는 인쇄물이 있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 매우 기능주의적인 시각으로 보고있다.


          *네빌 브로디

          - 해체주의 타이포그라피를 만든 최초의 인물

          - 90년대까지는 국제타이포그라피 양식이 지배적이다가 네빌브로디에 의해 깨졌다.

          - 나는 순수회화적인 관점에서만 그래픽디자인에 접근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 네빌브로디는 우리나라 브랜드와 협업을 많이한 디자인 거장이다.


          <문학과 타이포그래피의 경계>

          * 타이포잔치

          - "supertext"

          - 단순히 타이포그라피가 주어진 걸 뽑는게 아니라 글 자체를 생성하고 공유하고 개    입한다.

          - 신문기사를 쓸 때 정치적인 기사를 쓰거나 포스터를 만들 때 헤드라인이 어떤 서체, 어떤 컬러를 갖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에게 반감을 줄 수도 있다. 나중에 사람들의 심미까지도 고려를 해서 내용을 컨트롤하게끔 하는 역할도 가능하다.


          * 이소호의  시 "집"

          - 집과 관련한 주제이며, 집의 모양을 가지고 있는 시이다.

          - 집의 갑갑함을 표현하는 내용이 형태로 잘 나타나 있다.


          <과제>

          - 문학과 시각적이미지의 경계에 대한 작품들,사례들을 가지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할 것(6/18일 00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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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머니즘 - 문학, 건축,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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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3년 프랑스 - 100년 전쟁이 끝난 후 오렌지 색 땅은 프랑스 왕이 직접 통치하는 지역이다. 아직 통합되지 않은 지역은 브르타뉴이다. 서북 지역을 보면 아직도 독립된 공작의 공국이 있다. 몇 년 후에 프랑스 왕실에 재산이 되지만 아직 1453년에는 독립적인 지역이다. 전쟁 후에 프랑스 왕의 권력이 강화되었고 프랑스는 국가로써는 조금조금 씩 통합되었다. 왕 아래의 공작,백작의 힘이 많이 감소되었다. 1590년대 유럽의 모습을 보면 1453년에 백년의 전쟁 뿐 만아니라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는 원래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는데 이 지역에 있었던 Turc사람들이 큰 제국을 만들고 있었는데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해서 동로마시대에 종말이 왔다. 그래서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던 지식인들이 전부 그리스를 통해서 이탈리아에 일부가 갔고 나머지는 동유럽을 통해서 프랑스,영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으로 갔다. 그곳은 르네상스의 시작에 아주 중요한 기원이 된 요인이다. 녹색으로 되어있는 부분은 1590년대에 오스만 제국의 지도이다. 이제국은 보다시피 매우커졌다. 오스만 제국은 기독교 왕국에 큰 위협이 된 이슬람 국가이다. 

              1592년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15세기 부터는 봉건영주와 봉신 관계가 많이 변했다. 더이상 실제로 중요한 관계가 아니고 혁신적인 관계가 되어버렸다.  봉건제도의 시대는 중세시대이고 중세시대가 끝나고 15세기말부터 18세기 말 까지는  Ancien regime(구체제)가 된다.  이 시대는 아직 민주주의 시대가 아니다. 프랑스 대혁명 전 시대이다. 이때부터는 농노들이 없어지고 중세시대의 3신분 - > 3계급으로 바뀜. 

              귀족(아직도 왕정이니까 귀족은 존재), 성직자, 제3계급(평민) 

              여러가지 측면에 있어서 중앙집권화가 다 되었다. 그래서 중세시대와 큰 차이가 있다. 중세시대 프랑스 지도를 보면 프랑스 영토의 큰 분리들이 있었다. 공작,백작,왕의 영토가 전부 따로따로 있었다. 그러나 15 16세기 부터는 프랑스의 주요 유일한 군주는 바로 왕이었다. 15세기가 끝나면 시작하는 것은 "이탈리아의 전쟁들"이다.

              왕 1명이 한 것이 아니라 샤를 8세, 루이 12세, 프랑수아 1세 이렇게 프랑스와 전쟁을 했다. 보통 프랑스 르네상스 시대는 이탈리아 보다 한 백년 정도 늦게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문예,회화,예술분야들이 프랑스보다 일찍 시작했다. 

              프랑스는 이탈리아 전쟁을 통해서 이탈리아 문화들을 접하면서 생활방식, 건축양식들을 많이 배우게 되었다. 무조건 전쟁을 통해서 배웠다고만은 볼 수 없고 그 시대에는 이미 유럽내에서 교류들이 많았기 때문에 다른 경로로로도 배웠을 것이다.

              특히 이탈리아의 건축양식이 프랑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로마의 옛날식 건물들을 재발견해서 왕들이 사용하는 건물의 모습이 많이 변하기 시작했다. 물론 회화에서는 유명한 화가들이 많아서 이 새로운 르네상스 스타일이 많이 발생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얘기하면 이탈리아의 전쟁들은 프랑스의 르네상스시대 기원이 아니더라도 프랑스 르네상스를 탄생하는 속도를 빠르게 만들었다.

              옛날의 중요한 텍스트들을 다시 읽을 수 있어서 유럽에서는 큰영향이 있었다. 봉건제도가 없어지고 대신에 조금조금씩 여러 군주들이 지역적으로 직접 자신의 영토를 통치하는 것 보다는 조금 중앙집권화된 국가의 군주가 나라를 통치하는 것을 보면 이런사람들이 자본이 있어서 자기 권력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문화예술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봉건제도가 없어지고 중앙집권화가 발생하고 그 뿐만 아니라 콘스탄티노플에서 온 지식인들이 옛날 없어졌던 로마시대의 유물을 다시 가져다 주고 재발견하게 하는 역할이 있었고, 다른말로 얘기하면 이 시대는 로마시대의 가치관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다. 딱 15세기부터는 사람들이 로마시대의 유적지들을 발굴하기 시작한다. 예를들어 로마시대의 유명한 네로황제의 집을 우연히 발견한다. 이 숨어있었던 네로황제의 멋있는 황금궁을 발견해보니까 안에 그림들과 특히 조각들이 있었다. 그 때 로마에서 살았던 미켈란젤로라는 예술가가 직접 로마시대의 멋진 조각들을 보면서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로마시대의 예술양식들을 재발견하면서 다시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13,14세기부터는 점점 새로운 개성화 아니면 개인화가 되었다. 이 14,15세기는 개인의 탄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더이상 사회의 중심은 종교가 아니다. 신도 아니고 집단도 아니고 개인이 그때까지 종교가 사용했던 자리를 대신해서 사용하게 된다. 그래서 이 새로운 인간에 집중하는 것은 Humanisme 휴마니즘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인간중심주의 아니면 인간주의. 인문주의는 인문학, 문화에서 따오는 경향이다. 인문주의는 르네상스시대의 새로운 경향이다. 문학의 중요성을 재발견하는 태도 + 개성화된 개인의 새로운 지위 를 인정하는 시대. 그것이 바로 르네상스 시대이다.

              휴머니즘이라는 것은 어떤것이냐면, 전통교육에 대한 거부이다. 전통교육이란 중세시대에는 대부분 교수들이 성직자들이었다. 이런 성직자들이 직접 학생에게 가르치고 제일 중요한 학문이 뭐냐면 신학이었다. 옛날 아리스토텔레스 논리도 공부하고 아주 고전적인 학문들을 공부했던 것이고 물론 지식의 내용은 종교인들이 가르치니까 물론 성경과 일치하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이런 라틴말로 된 교육은 16세기 되면 더이상 시대와 잘 맞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프랑수아 1세같은 왕은 성직자들이 프랑스에서는 교육분야에서는 권력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사고방식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더이상 고정된 지식을 대학교에서 가르치면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물론 소르본이라는 대학교는 성직자들이 운영하니까 해체 할 수는 없었다. 프랑수아1세가 결정했던것이 뭐냐면 소르본대학교 바로 옆에 새로운 대학교를 만들었다(college de France - 꼴레즈 로얄, 프랑스 최고의 대학교이며 교수끼리 위원회를 만들어서 새로운 교수를 선출하고 매년 새로운 과목을 가르쳐야하고 이 학교의 특징은 학생들이 특별히 신청할 필요가 없고 누구나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대학교 이다.) 파리에 가면 소르본 대학교가 있고 길건너에 꼴레즈 프랑스가 있다.

              유럽에서 16세기의 중요한 혁신중 하나는 인쇄기술이었다.  그래서 그 뒤로 폰트라는 글씨체가 발달하였다(Garamond_글씨체 종류) 

              교육관련된 것은 자료 참고문헌 관련된 도서 가 중요하니까 인쇄기술이 매우 중요하였다. 그리고 고대언어를 그때부터 배울 수 있었다. 몇세기동안 자료가 없어서 서유럽 사람들이 라틴어를 읽을 줄 알앗는데 그리스 텍스트가 많이 없어져서 그리스말을 몰랐던 사람들은 그리스텍스트를 읽을 수 없었다. 그다음 히브루어. 히브루어는 성경의 언어인데 이 시대에는 종교가 아직 중요한 것인데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없으면 문제이기 때문에 대부분 성경을 읽고 해설하는 사람들이 라틴어의 성경을 읽고 해설했다. 그래서 직접 오리지날 텍스트를 보며 해석해야했다. 그다음은 고전문화의 부흥이었고 점점 이 고전문화의 부흥은 새로운 것이 추가 되었다. 16세기부터는 현대과학의 탄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점점 이성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있다. 현대적인 과학의 원칙을 정의하기 위해서 16세기 과학자들이 점점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논리,합의 등의 이성적인 과정을 정의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중세시대 독단주의를 반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16세기 부흥이라는 시대는 정신적인 것 뿐만아니라 인간에 대한 새로운 완전 혁신적인 관점이었다. 그래서 완벽한 인간은 그냥 똑똑하고 교양도 많고 그런 인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사람이 몸도 건강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중세시대의 특징은 약간 육체적인 차원을 무시했던 시대였다. 육체는 특히 카톨릭이나 기독교 종교에 있어서 죄와 관련된 차원이라고 보아서 육체의 몸은 성욕과 관련된 것이고 부정적인 것으로 보았는데 르네상스 시대에는 건강한 몸을 인정해야한다고 그래서 이 아주 유명한 라틴말로 되어있는 문서가 있는데 '멘사나 인 꼬르포레 사노' =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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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예술과 디자인 : 순간의 이야기 

                - 문학과 미술의 관계는 추후에 문학과 디자인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있다. 둘은 굉장히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여러 미술사나 책들을 보면 굉장히 오래전부터 문학과 미술의 이미지와 언어에 대해 고민한 흔적들을 볼 수있다. 

                레싱[라오콘, 회화와 문학의 경계에 관하여]:시간의 순서에 따라 표현, 조각가는 고통과 절규의 한 순간만을 포착할 수 있음, 시에서는 이것을 매 순간마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묘사할 수 있으며 문학에서는 고통에 따른 거친 절규를 완화시킬 필요가 있음

                -문학과 미술 관계의 역사: (19세기) 완전히 새롭게 합성된 종합예술이 아니라 레싱의 이론이 아직 지배하는 가운데 예술가의 예술적


                -19세기(1800년대 후반): 인상주의(모네 -이쁘고 아름다운 그림들), 춤을 표현한 인상주의 화가들(실증, 실제를 기반으로 그림을 그림), 순간의 찰나의 아름다움을 화가들이 표현한다면 문학작가들도 찰나의 순간을 그림같이 문학작품으로 표현


                -로버트 발저, 타너가의 남매들: (소설책의 한 구절 읽고 무슨 생각드는지)_눈에 보이듯 평화롭고 따스한 마을을 표현


                -인상주의: 그림에 시간성은 존재하지 않지만 마치 시간 순서대로 정밀하게 이야기들 하듯이 표현함, 바라보는 관점이 비슷함 (예술작품과 문학작품의 관점도 비슷)


                -1910년: 아방가르드 예술의 주무대 (다다이즘)

                 전통과 분리되어 완전히 새롭게 시도하는 예술 (튀려고함)

                 문학의 언어가 조형 미술 속으로 침투(피카소의 콜라주 작품, 신문지의 글씨를 찢어 오려 붙힌 작품)

                 문학에서의 시각적 구성이 현대문학의 비중있는 요소들로 주목 (문학의 글과 문맥이 의미가 있지만, 아방가르드 시대엔 글씨 자체를 이미지화해서 예술로 표현)

                서로 독립된 두 예술 사이의 관계로 보기보다 상호적 침투로 나타남(배타적관계>혼합관계)


                -1960년대 이후: 구조주의와 기호학의 공헌> 언어와 이미지의 관계는 종전과 완전히 다른 측면에서 연구, 시공은 서로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현대 예술 이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게됨(=>포스트 모더니즘, 변화의 극동기, 가장 중요한 시기), 경계가 허물어 지게 된 시점


                -삽화/일러스트: 일상생활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문학+예술 예시, 그림과 말이 일치된 상상력, 이념을 볼 수 있는 요소,

                *삽화/일러스트: 색에 담겨 있는 그림들, 글을 고조하기 위해 말과 그림의 관계의 기초적 변형, 풍경과 인물을 묘사해서 문장을 보완하기 위해, 고대 이집트부터 (역사는 안중요)

                예시) 어린왕자 그림(생텍쥐페리가 화가들에게 삽화를 의뢰했지만 다 마음에 들지 않아 본인이 일러스트를 그림), 이코노텍스트(글을 보완해주는 삽화의 상호작용), 코끼리를 먹은 보아뱀(그림이 있어서 독자들의 이해력을 도움), 바오밥나무 행성(좁은 행성에 홀로 있는 어린왕자 삽화를 통해 글의 내용을 보완, 비현실적인 그림으로 작가와 작품이 담고있는 메시지, 심리를 담음), 그림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더 전달이 잘 됨, 작품에서 글보다 그림이 더 중요한 경우가 있음

                 

                -그림책: 삽화와는 약간 다름, 삽화가 들어가는 책은 반드시 글씨가 있어야 하고, 그림책은 그림만 있어도 됨, 그림책에서 그림은 절대적인 요소, 상상의 지평을 넓혀주기 위해서, 4차원적인 상상력을 위해,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도 존재


                -최초의 그림책: 세계도회 => 언어교육을 위해서 책을 만들었다가 독자들이 이해를 못하자 오감을 활용해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인지함,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그림자 최초 발간, 까마귀, 양, 아기가 우는 소리 등을 그림과 글씨를 함께 제시, 정교하고 현재와 다르지 않을 만큼 잘 만들었음, 

                최후의 날에 대한 그림: 사람을 심판하는 듯함(종교적인 공포심, 경각심을 위해 그림 삽입)



                -북커버 디자인: 북의 외부적 구성요소를 시각화한 것,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함축화한 단 하나의 이미지(그만큼 북커버 디자인은 중요함), 사람들의 시선을 끌만할 자극적인 디자인이여야하지만 내용과도 잘 어울려야하기 때문에 작업하기 어려움, 포스터 디자이너/북 디자이너들은 함축성, 주목성에 심혈을 기울임


                -손안의 책(교보문고 책 표지 전시회): 스마트하고 감각적인 선택으로 읽기 싫은 고전적 작품들을 읽고 싶어지게 만듦, 그 만큼 책 표지의 중요성이 증대


                -책 표지들은 주기적으로 리뉴얼됨, [유시민, 청춘의 독서] -커버가 바뀜으로써 하고자하는 내용이 달라보임



                -[무라카미 하루키,노르웨이의 숲]: 독자들에게 뉘앙스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미니멀한 추상미술을 보여줌

                -[모순]: 큰 차이는없지만 조금 더 세련된 정서

                -[시절과 기분] :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하는 이야기가 내용을 대략적으로 암시해주기 때문에 북 커버의 중요성이 느껴짐,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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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미디어 아트 담론

                  - 인공지능의 기술로 인해서 예술의 표현 도구가 변화할 것으로 예측

                  - 앞으로 나아갈 미디어아트들은 지금의 아트와 다른 ai시대의 아트가 탄생할 것이다. 어떤게 등장할 지 예측할 순 없지만 앞으로는 정말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과거의 미디어 아트는 기술-미디어 자체의 특성만을 활용해왔다면, 현대에는 기술-미디어가 왜곡하고 덮어버리는 현실의 모습을 드러낸다. 

                  - 2006년 이후 뉴미디어 아트는 단지 그냥 신기한 아트인가?하는 의문이 생기고 그 후로는 기술에만 의존하려는 생각이 줄어들었다.

                  -기술에 의해서 기술이가지고 있는 특징 만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미디어에 의해 잊혀지고 사라지는 현실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떠오르고 있다.(단순 눈요깃거리 x, 동시대적인 이슈를 드러내는 것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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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미디어 아트의 양상

                    1. 상호작용성

                    - 관객들이 작품에 참여할 수 있으며(만지면 변함 등)쌍방향의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2. 복제가능성

                    - 명화들을 복제하여 고화질로 작품들을 보여줄 수 있다. 

                    3. 변형 가능성

                    - 원본을 합성,변형,조작 등 패러디의 수준을 넘어서서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가능하다.

                    4. 네트워크성

                    -웨어러블 기기의 탄생으로 인해 서로 상호작용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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