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jiseoul(모지훈)
소개말이 없습니다.

1920년대에는 프랑스 중국인 부부가 흔하지 않았다.

모니크의 할머니는 엄마를 없는사람 취급 (부정적)

할아버지는 딸의 남편을 "장"이라고 부름(원래이름을 알려는노력x )

negocier/negociation = 다문화 가정에서 필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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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2일 14:30

    모니크 보드리 마무리

    : 모니크의 큰아버지가 마을에 있는 유일한 2층짜리 집을 보여줌

    이 집은 모니크의 아버지가 평생동안 중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낸 돈으로 지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리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평생동안 자신의 가족에게 돈을 보낸것을 알게됌.

    아버지는 이마을의 흙과 굴껍질을 가져감. 아버지는 맨날 프랑스 굴을 놀렸다, 너무 작다고, 아버지의 딸 모니크가 아버지가 항상 프랑스에서 나오는 굴을 놀리니까 모니크가 어떤말을 하곤 했냐면 아버지가 아버지마을 고향의 굴을 멀리에서 살면서 이 추억속의 굴은 크게 보일 수 밖에 없다고 우리추억에서는 모든것이 크고 아름답고 그렇다지만 그 마을의 굴은 실제로 정말 컸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없이 중국으로 가는것은 엄마에게는 더이상 무의미하다 ,엄마와 중국의 관계는 아버지 엄마의 남편과 관련된것이었다고 발견했습니다 아주아주 깊은관계였지만 평생동안 중국식당에서 일하고 주변에 친구들이 다 중국인이었고 물론 중국어도 배웠지만 사실은 이 관계는 남편과 관계된 관계였다고 엄마는 상징적으로 중국으로 갈 생각이 없었는데 남편이랑 꼭꼭 가고싶었다 문화적인 정체성 떠났던 고향과의 관계가 많이 달라진다 첫세대 보다는 제 2 제3세대 이민자들은 부모보다 그 국가의 관계가 더 깊을수도 있다. 이민자라는 것은 너무 쉽게 묘사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1920년대 1930년대 프랑스 파리 사회는 생각보다 아시아 출신 사람들을 받아들일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어떨때는 프랑스에서는 이민자들은 인종차별, 이민자관련차별 등 많은 차별을 당함. 시대,지역 이민자의 출신 다 고려해야 이민자 상황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고 이해할 수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정체성이라는 것은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파악할 수 있다. 

    모니크 같은 경우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학교를 다녔지만 어렸을 때 부터 너가 중국인이다 이런말을 들었으니까 자기 정체성에는 이런 여러겹들이 있는 상황이라고 이해할 수있다. 프랑스말로 얘기하면 호랑이 무늬들은 형용사가 있다. 프랑스말로 얘기하면 tigré 호랑이 무늬처럼생긴 모양 .

    Gibert Durand의 유명한 말 "âme tigrée" 모니크 보드리의 외양은 서양인+동양인 짬뽕이지만 자기마음도 이런 tigre 마음이다. 프랑스인이면서 이런 중국에서온 파악하기 어려운 정체성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새로거주하는 사회에서는 이민자들이 통합하기위해서 이민자들은 항상 협상같은 것을 해야한다고 했잖아요. 자기나라에서 사는것처럼 그대로 살 수 없으니까 새롭게 선택한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여야한다=네고시아시옹. 

    자기 사는 나라의 문화정체성 + 부모들의 문화적인 정체성을 잘 통합해야함. 이민자들에게 교육이 얼마나 사회 지위상승을 위해서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학교는 사회적통합을 위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이 있다. 모니크보드리처럼 널리 알려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내가 선택한 이유는 이민박물관 웹사이트에 여러명이 나오는데 그중에서는 아시아인이였고, 긍정적인 경험이 있었다고 볼수 있어서 잘통합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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